반응형 여행기1683 런던의 눈 London Eye 높은 곳에 오르면 또 다른 런던이 있다. 여행기/유럽 2010. 10. 10. [아일랜드,벨파스트] Belfast 벨파스트 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이미지는 폭동과 IRA 의 폭탄 테러 등이다. 이러한 이미지 때문에 가기 전에 약간 주저했었다. 한때 벨파스트는 베이루트, 바그다드 그리고 보스니아 와 함께 여행자들이 피해야 할 4 “B” 중 하나였다. 이젠 더 이상 격렬한 분쟁은 찾을 수 없지만, 아직도 그 흔적은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벨파스트는 17세기 경 많은 이민자들의 유입에 의해 성장한 도시이다. 아일랜드의 다른 도시와 달리 산업혁명의 중심에 있던 곳으로 섬유공업과 조선업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산업들로 급성장했다. 1800년에 2만 여명이었던 인구는 20세기 초엔 무려 40만에 달해 아일랜드 제일의 도시인 더블린의 인구를 거의 따라 잡을 정도였다. 아일랜드의 분리 독립후 벨파스트는 북아일랜드의 수도로서의 .. 여행기/유럽 2010. 10. 7. [아일랜드,둘린] Cliff of Moher 모헤어 절벽 둘린은 특별히 볼것은 없는 아담한 어촌마을이지만 한해 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모헤어 절벽을 찾으면서 이곳도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골웨이 에서 하루에 두 번 있는 버스를 타면 한 시간 반이 지나서 둘린에 도착하게 된다. 아담한 마을엔 조그만 펍이 몇개 있다. 이곳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아이리쉬 음악을 들으며 기네스를 한잔하며 친절한 아이리쉬와 친해져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된다. 호스텔이 크지 않으니 도착하기 전에 예약하는 것이 좋다. 취사시설도 있어 간단히 한끼를 때울 수도 있다. 모헤어 절벽은 둘린에서 5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걸어가기는 좀 어렵고 호스텔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갈 수 있다. 절벽까지 가는 길엔 많은 오르막길이 있어서 다리 힘이 약한 사람은 종종 걸어서 자전거를 끌어야 하는 경.. 여행기/유럽 2010. 9. 30. [아일랜드,골웨이] Galway g 아일랜드의 서쪽해안에 위치한 골웨이는 아일랜드 중에서도 가장 아일랜드적인 곳이다. 약 10% 에 달하는 주민이 아이리쉬어를 사용하며 전국에 방송되는 아이리쉬어 방송인 TG4 도 여기 골웨이에 위치해 있다. 아트 페스티발로 유명한 곳이지만 , 축제 기간이 아니라면 골웨이 자체엔 그다지 많은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방문하기는 하지만 주위의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한 경유지이다. 골웨이는 더블린에서의 거리가 200km 밖에 안되지만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4시간 정도나 걸린다. 하지만 창밖의 경치가 아름다워 많이 지루하지는 않다. 7 만여명의 살고 있지만 그대로 아일랜드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이다. 크지만 않지만 아기자기 함이 있는 작은 도시이다. 골웨이를 가로지르는 코리브 강은 연.. 여행기/유럽 2010. 9. 25. [아일랜드,코크] 타이타닉의 마지막 기항지 Cobh코브 타이타닉의 마지막 기항지로 알려진 코브항은 아이리쉬 이민의 중심이 있던 곳이다. 250만명 정도가 이곳을 통해 캐나다, 미국, 호주 등으로 흩어져 갔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고향 땅을 등지고 머나 먼 타국 행을 결정한 데에는 단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잘 살아보겠다는 것보단, 일단 굶어 죽지 않고 살아 보자는 생존의 목적이 컸다. 아이리쉬 이민의 가장 큰 원인은 Great famine 으로 알려진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이다. 1845 년 전국에 걸쳐 감자 마름병이 퍼짐에 따라 대부분 아이리쉬들의 주식으로 이용되던 감자를 수확할 수 없게 되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굶거나 그러인한 병에 걸려 죽고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은 생존을 위해 대서양을 건너갔다. 이로 인해 1845년에서 1852년 사이.. 여행기/유럽 2010. 9. 20. [아일랜드,코크] Cork 코크 아일랜드에서 남쪽해안 깊숙하게 자리 잡은 코크는 아일랜드에서 두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인구는 무려(?) 11만 9천명. 우리나라로 치자면 아주 소도시 이지만, 인구가 많지 않은 아일랜드에서 그래도 제법 규모가 있는 도시이다. 아일랜드의 다른 도시와 마찬 가지로 바이킹에 의해 9세기 초에 도시의 형태가 갖추어 졌고, 유럽대륙과의 교역항의 발전해 나간다. 중세에 흑사병이 유행 할때는 도시의 인구 반 이상이 죽고 2000 여명의 인구만이 남은 적도 있다. Cork 는 일반 항구와 같이 바다에 접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내해 위치하고 있어 천혜의 피항지로서의 요건을 갖추었다. 이 정도 깊숙하게 숨어있는 항구면 겨울철 북대서양의 거센 바람과 물결에도 끄떡 없으리라. 코크는 더블린에서 버스를 타면 4시간 15분.. 여행기/유럽 2010. 9. 19. [아일랜드,더블린] Bray 브레이 18세기 까지 브레이는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 했지만, 18세기 후반 더블린의 중산층들이 복잡한 도심을 떠나 브레이로 이주해 옮겨 오고 1854년엔 더블린과의 철로가 연결됨에 따라 아일랜드 최대의 해양리조트로 성장한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으로 휴양을 즐기는 사람이 급감하고 1960년부터는 해외여행이 증가함에 따라 휴양지로서의 활기참은 다시 회복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직도 더블린 시민으로부터 사랑받는 명소이다. 더블린에서 20km 정도 떨어져 있어. 버스나 다트를 타고 쉽게 갈 수 있다. 브레이에는 골프코스, 테니스, 세일링, 승마 , 수족관 들의 시설이 있지만 그래도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길게 뻗은 바닷가이다. 아직 물이 차가운 데도 가족끼리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도 보인다. 황폐해진 담벼락엔 낙.. 여행기/유럽 2010. 9. 19. [아일랜드,더블린] Dun Laoghaire 던 레어리 던 레어리는 더블린 시내에서 12km 정도 떨어진 항구 도시로 영국과의 연락항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던 곳이다. Dun 은 아이리쉬어로 요새를 뜻하는 말이고 Laoghaire 이란 말을 서기 5세기 아일랜드 왕의 이름을 딴 말이다. 조용하던 마을이 중요한 항구로 성장한 데에는 1807 년에 일어난 좌초 사고 때문이다. 더블린을 떠나 영국으로 향하던 두 척의 배는 던 레어리 근처에서 암초에 좌초해 400여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후 새로운 항구를 더블린 근처에 건설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1816년 의회의 승인을 받게 된다. 1817 년에 시작한 공사는 1859 이 되어서야 완공된다. 1821 새 항구의 건설 중 영국국왕 조지 4세가 방문함을 기념하여 킹스타운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가 독립 후 다시 원래 .. 여행기/유럽 2010. 9. 18. [아일랜드,더블린] Malahide 말라하이드 호스에서 멀지 않은 곳엔 말라하이드란 마을이 있다. 넓은 공원과 숲과 또 바다와 접해 있는 곳으로 이 마을은 795 년 바이킹이 정착하면서 형성되었다. 염전이나 교역항으로 사용되던 말라하이드는 18 ~ 19세기 초에는 더블린에서 돈 좀 있는 사람들이 이용하던 리조트로 사용되면서 커진 곳이다. 현재도 여름엔 당일여행으로 많이 찾는 곳이다. 말라하이드는 더블린 시내에서 다트를 타거나 버스 42번 이나 32A 를 타고 45 분 정도 걸려서 도착한다. 말라하이드 성으로 가는 길은 상당히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는데, 혼자 가면 조금 으시시 할 수도 있다. 숲길을 가다 보면 넓은 잔디밭과 말라하이드 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말라하이드 성은 1185 년 헨리 2세의 아일랜드 원정시 함께 했던 기사 Richard Tal.. 여행기/유럽 2010. 9. 18. [아일랜드,더블린] Howth 호스 더블린 시내 구경이 지겨울 때문 교외로 나가 보는 것도 좋다. 시내에서 15 km 정도 떨어진 곳에 호스란 항구가 있다. 시내에서 버스( 31, 31B )나 다트 DART (Dublin Area Rapid Transit) 를 타고 쉽게 갈 수가 있는 곳이다. 더블린에 교통에 익숙하지 않다면 다트를 타는 것을 추천하는데 리피강 남쪽에서는 Tara 스테이션 , 북쪽에서는 Connolly Station 이 접근이 용이하다. Connolly Station 에서 다트를 타면 호스까지 가는데 한 15분 정도 걸린다. 종점이니까 목적지를 지나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Howth 란 지명은 영어로 Head 를 뜻하는 덴마크 어 hoved 에서 왔다. 호스 항은 1807 년 영국에서 오는 우편물 운반선을 위한 항구로 .. 여행기/유럽 2010. 9. 18. [아일랜드,더블린] 피닉스 파크 Phoenix park 유럽에서도 손 꼽히는 크기를 자랑하는 피닉스 파크는 16km 에 이르는 담이 707 헥타르에 이르는 공원을 감싸고 있다. 피닉스 파크와 불사조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깨끗한 물을 뜻하는 아이리쉬 fionn uisce 를 영어식으로 만든 것이다. 12세기에 성요한 기사단의 수도원으로 사용되던 이곳은 헨리 8세의 종교개혁으로 압루되고 1662 년에는 왕족을 위한 사냥터로 꿩과 야생사슴 등을 방목하게 된다. 이때 공원 전체를 에워 싸는 담장도 함께 만들어진다. 1745년에 공원은 시민에게 개방이 된다. 공원 안에는 아직도 야생사슴이 많이 살고 있으며, 도로 표지판에도 사슴을 조심하라는 표지가 있다. Wellington Monument – 63 미터에 이르는 오벨리스크는 Duke Wellington 을 승리를 .. 여행기/유럽 2010. 9. 17. [아일랜드,더블린] Grand Canal 대운하 동해안에 있는 더블린과 서해안에 있는 Limerick 을 운하로 연결하자는 아이디어는 1715 년에 제안되었고 1757 년에 의회의 승인을 받게 된다. 1803년 에 완공된 운하는 877,000 파운드가 소요되었다. 운하는 화물과 여객운송의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차츰 다른 운송 수단에 밀렸으며, 1960 년에 마지막 화물선을 끝으로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다. 현재 운하주위는 시민들의 산책로나 사이클 도로로 사용되기도 한다. 날씨가 좋은 날은 운하 주위를 걸으면 햇살을 만끽하거나, 화물선 대신 운하를 차지하고 있는 거위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여행기/유럽 2010. 9. 17. 이전 1 ··· 137 138 139 140 14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