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유럽

간단하게 살펴보는 잉카제국와 쿠스코의 역사 [남미 배낭 여행, 페루 쿠스코 ]

트레브 2016. 5. 7.

간단하게 살펴보는 잉카제국와 쿠스코의 역사 [남미 배낭 여행, 페루 쿠스코 ]

잉카 제국 시절에  Huacaypata  혹은 Aucaypata 로 불렸던 아르마스 광장은 그 당시에도 쿠스코의 중심이었다.  광장을 둘러싼 많은 건물들은 그 모습을 완전히 바꾸었지만 페루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아르마스로 이름을 바꾼 광장은 아직도 쿠스코의 중심이다. 

 

지금은 페루의 관광의 중심이 된 쿠스코는 과거 잉카제국의 수도였다.   잉카를 제국으로 키운 장본인은  9번째 왕 파차쿠텍(Pachacutec) 인데 그의 동상은 지금도 아르마스 광장 가운데에서 빛나고 있다.  파카쿠텍의  아버지 비라쿠차(Viracocha) 때 까진 잉카는 쿠스코 주변만을 통치하는 나라였다.  또한  Chanka 등과 같은 산악부족의 잦은 침입을 받기도 했다.  1438년에는 쿠스코의 바로 앞까지 침공해 온 적들을 피해 비라쿠차(Viracocha) 는 왕국을 포기하고 도망쳤지만 그의 아들 파차쿠텍(Pachacutec) 은 남아서 연륜있는 장군들과 함께 적들을 물리쳤다.  그 전투에서 돌들이 전사로 변해  파차쿠텍(Pachacutec) 을 위해 싸웠다는 전설이 생기기도 했다. Chanka 족을 점령한 파차쿠텍은  스스로를 “Inca” 즉 왕이라고 칭한다.  도망간 그의 아버지 소식은 잘 모르지만, 소심했던 선왕인 조용히 돌아와 지내며 여생을 보내지 않았을까?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타향을 전전하다가 생을 마감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왕이 된 피차쿠텍은 본격적으로 그의 제국을 넓혀 가는데,  거대한 호수인 Titicaca 와 Junín 사이의 중부 안데스 산맥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정복자였던 피차쿠텍은 도시 개발에도 재능이 있었는데,  퓨마모양의 쿠스코를 만들고 강줄기를 변경하여 쿠스코를 흘러가도록 했다.  또한 쿠리칸차신전과 왕궁도 건설을 했다.  피차쿠텍의 아들 Túpac Yupanqui 도 선왕의 뜻을 이어받아 제국을 계속 넓혔는데 북쪽으로는 현재의 에콰토르의 퀴토와 남쪽으로는 칠레의 산티아고 지역까지 제국을 확장한다.   Huayna Cápac 은 11번째 잉카로 통일된 제국의 마지막 왕이었다.  Huayna Cápac 시대의 제국은 현재의 콜롤비아- 에콰도르 국경까지 세력을 확장했었다.   하지만 그가 정복전쟁이 활발이 진행될 때 커다란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발견하게 되고 그들은 신대륙에 많은 전염병을 가지고 온 것이다. 1525년에 사망한  Huayna Cápac 왕도 전염병이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Huayna Cápac 은 죽기 얼마 전 제국을 둘로 나누어서 배가 다른 두 아들에게 제국을 나누어 통치하도록 한다.  Atahualpa 는 에콰도르 지방 여인에게서 정복전쟁 중에 낳은 아들이었고  Huascar 는  쿠스코 출신의 여인에게서 낳은 아들이었다.  두 아들은 각자 제국을 잘 통치했지만, 그 권력을 나누려 하지 않았다.   북쪽 군대의 세력을 등에 업은 Atahualpa 와  쿠스코 인들의 지지를 받은 순혈의 Huascar 는 마침내 맞붙게 되었지만 결국 1532년 Atahualpa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두 이복형제가 제국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는 동안  스페인에서 온 프란시스코 피자로(Francisco Pizarro) 가 페루의 북쪽에 상륙해 남진을 시작했다.  Atahualpa 는 소규모의 외국인부대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내전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남미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사건이 1532 Cajamarca 에서 발생한다.   Atahualpa 는 매복 중이던 수십 여명의  프란시스코 피자로(Francisco Pizarro)의 병사에 잡히게 되고  수 천명의 원주민들을 학살당한다.   잉카제국에서는  Atahualpa 의 몸값으로  방을 가득 채울 금과  두 개의 방을 가득 채울 은, 그리고 Qorikancha 신전 벽의 모든 금을 때어 보냈지만,  수개월 동안 감금되었던 Atahualpa 는 결국 살해당하고 만다.  찬란하고 광대했던 잉카제국이 너무나 허망하게 붕괴되고 만 것이다.

 

1533년 11월 8일 쿠스코에 입성한 피자로는   Huascar  왕 Atahualpa 의 이복동생 Manco 를 새로운 왕으로 정해 꼭두각시 정부를 괴뢰왕국을 세운다.  하지만 잉카의 피를 물려받은 Manco 는 피자로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반란을 일으킨 Manco 는  스페인 세력을 거의 축출할 수 있었으나 아쉽게도 실패하고 결국  Vilcabamba 의 정글로 도망하게 된다. 

쿠스코는 다시 스페인 세력에게 넘어갔지만 해양성의 스페인인들은 새로운 식민 수도 리마에 관심을 두게 된다.  금과 은도 사라진 쿠스코는 역사의 뒤안길에 남겨지게 되고 잉카의 건물들은 교회나 콜로니얼 양식의 건물들로 바뀌어져 가며 과거의 영광은 차츰 잊혀지게 된다.   1780년에 다시 한번  Túpac Amaru II 에 의해 봉기가 일어났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진압되고 만다.   1820년대의 독립운동은 보통의 쿠스코인들의 삶을 크게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쿠스코 인들의 삶은 가장 급격하게 바꾸어 놓은 것은 1911년 마추픽추가 발견된 사건이다.  남미 여행에서 절대 빼 놓지 말아야 할 마추픽추의 발견으로 조용했던 지방 도시인 쿠스코는 페루의 관광 중심이 되었고,  전세계의 관광객들을 쿠스코로 끌어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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