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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제국의 흔적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포로 로마노(Foro Romano) [이탈리아,로마]

트레브 2012. 5. 27.

고대 로마제국의 흔적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포로 로마노(Foro Romano) [이탈리아,로마]

지금은 이탈리아의 수도로 불리는 로마는 한때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대제국의 이름이었습니다. 로마에는 많은 로마제국의 유적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로마제국의 흔적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포로 로마노라 불리는 로마 공회장입니다.  

포로 로마노는 팔라틴 언덕과 카피톨리안 언덕 사이에 있는 계곡에 조성된 광장으로 로마제국의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던 곳입니다. 이 포로 로마노에는 원로원, 의사당과 신전 등의 공공기구와 함께 일상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로마의 정치, 경제, 사법, 행정, 법률 등의 모든 역할을 수행했던 로마제국의  가장 중심에 있던 곳입니다.

로마 제국이 융성하던 2세기에  로마는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대도시였지만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난 후 중세를 거치면서 13세기의 로마는 인구 1만 7,000명 정도의 초라한 도시로 전락했습니다.

성당이나 궁전 및 귀족의 저택을 지을 때에 근처에 있던 포로 로마나는  건축에 필요한 석재를 간편하게 조달할 수 있는 곳이었고, 결국 포로 로마나는 거대한 채석장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포로 로마나를 장식하던 우아하고 멋진 고대의 대리석 조각들은 불에 던져져 석회를 제조하는데 사용되게 되었죠.

현재의 포로 로마노는 19세기 이후에 토사에 묻혀 있던 것들을 발굴한 모습입니다.

고대 로마 제국으로 떠나는 포로 로마노 여행은 콜로세움 옆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Arco di Costantino)에서 시작됩니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은  콘스탄티누스 1세가 단독 황제로 집권하게 된 계기가 된 밀비우스 다리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개선문입니다.

웅장한 건물들의 잔해밖에 남지 않은  Via Sacra 이지만,  고대 로마제국의 흔적은 아직도 느낄 수 있습니다.  멀리 보이는 티투스의 개선문 (Arch of Titus) 앞에는  갈리아 원정을 승리하고 온 황제의 개선식이 행해지고 있을 것만 같네요.

서기 82년에 세워진 티투스의 개선문은 예루살렘 함락 등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건설되었습니다. 너비 13.50 미터 높이 15.40 미터의 크지 않은 개선문이지만  중세 이후에 건설된 많은 개선문들이 바로 이 티투스의 개선문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개선문(Arc de Triomphe) 이죠. 

예루살렘 함락을 기념해서 세운 이 개선문은 유대인에게는 치욕의 역사를 상기시킵니다. 그래서 아직도 유대인들은 이 개선문 밑을 지나지 않는다고 하네요.

훼손이 심해 원래의 형태를 가늠조차 하긴 힘든 건축물이 많은 포로 로마노이지만,  안토니우스와 파우스트나의 신전 (Temple of Antoninus and Faustina) 의 상태는 아주 양보합니다.  서기 141년에서 세워진 이 신전은 황제 안토니우스 피우스가 그의 황후 파우스타나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세웠졌습니다.

이 신전이 파괴와 약탈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7세기경 부터 산 로렌조 인 미란다( San Lorenzo in Miranda)교회로 변경되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 천년동안 불이 꺼지지 않았던 베스타 신전(Temple of Vesta)은 신성한 장소로 여겨지던 곳입니다.  귀족집안에서 선발된  6명의 처녀제관들이 지키던 곳으로 30년간 성화를 지키는 의미를 수행해야 했습니다. 황제와 같은 대우를 받던  제관들이지만 순결을 잃으면 바로 생매장 당했다고 합니다.  역사상 이 형벌을 받은 제관은 10여명 가량 된다고 하네요.

 

거대한 기둥만으로 당시의 웅장함을 연상케 하는 사투르누스 신전 (Temple of Saturn)은  주피터의 아버지이고 농업의 신인 사투르누스에게 바쳐진 신전으로 기원전 497년에 건축되었고 국가의 중요한 보물을 보관하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사투르누스 신전 뒤편에 있는 셉티무스 세베루스 개선문은  (Arch of Septimius Severus)은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먼저 발굴된 유적으로 18세기엔 개선문의 반 정도만이 지상으로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셉티무스 세베루스 의 두 아들 카라칼라과 게타가 각각 메소포타미아와 아라비아에서 승전한 것을 기념해서 서기 204년에 건축된 것입니다.  공동통치자였던 게타를 살해하고 단독통치자가 된 카라탈라는 개선문에서 동생의 승전 기념 조각을 지워버립니다.

로마의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는 카피톨리오 광장의 Palazzo Senatorio는 고대 고마제국의 도서관이었던 Tabularium위에 세워졌습니다.  포로 로마노에서 Palazzo Senatorio 뒤면을 보면 이처럼 고대와 중세의 건축양식을 한번에 볼 수가 있습니다.

어둠 사이로 보이는 포노 로마노는  사라진 제국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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